칼럼
최근 K-pop 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통산 아홉 번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스트레이 키즈는 역대 그룹 아티스트 가운데 비틀스(19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위 기록을 보유하게 됐으며, 롤링 스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얼마 전에는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보이콧 선언이 화제가 됐었죠. 저처럼 지난 세기를 제대로 살아본 20세기 소년소녀에게 청천벽력, 상전벽해 같은 뉴스가 연일 들려옵니다.
![2024년 8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간 스트레이 키즈의 ‘dominate’ 월드 투어 현장. [사진 출처: Shutterstock.com]](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8/photo_01-1.jpg)
2024년 8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간
스트레이 키즈의 ‘dominate’ 월드 투어 현장. [사진 출처: Shutterstock.com]
그래미를 보이콧한 K-pop 아이돌, BTS의 기세와 위상🌍🏆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대중문화 패권이 수십 년 만에 붕괴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뉴미디어 혁명을 통한 권력의 이동과 분산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쿨투라에(Pax Americana Culturae)가 무너지는, 거대 빙하의 파열음이 들립니다.
일단 방탄소년단 사례부터 볼까요. 그래미는 그동안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아왔고,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제도를 수정해 왔습니다. 그 진앙지는 늘 당연하게도 자국인 미국이나 그 사회를 둘러싼 주변이었습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여파로 ‘어번(urban)’이란 호칭이 차별적이란 지적이 제기되자 그래미는 이를 반영해 부문 명칭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미가 흑인 음악을 분류하면서 ‘어번(urba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표현이 인종을 기준으로 음악을 구분하는 차별적 용어라는 비판이었습니다.
![2019년 2월 10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한 BTS. [사진 출처: 셔터스탁]](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8/photo_02.png)
2019년 2월 10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한 BTS. [사진 출처: 셔터스탁]
캐나다 출신 가수 더 위켄드(The Weeknd)가 “그래미는 부패했다”라며 ‘영구 보이콧’을 선언하자, 그래미는 몇 년 뒤 그를 달래 시상식 축하 무대에 복귀시켰습니다. 그래미는 미국의 시상식인 만큼,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의 이슈와 아티스트들이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BTS 보이콧 사태는 달랐습니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한 아티스트가 보이콧을 선언하자 외신과 그래미가 잇따라 반응했다는 점에서, 가히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글로벌 팝 시장의 피라미드를 뒤집은 K-pop의 ‘大발견’👑
공고해 보이던 팝 시장의 힘의 피라미드를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 초고속 이동통신의 보편화, SNS의 등장, 유튜브의 대중화 같은 매체와 플랫폼의 변화를 꼽고 싶습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합니다. 그전까지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K-pop 역시 세계인의 대중문화 지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신대륙’과 같았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는 왜 1492년에야 아메리카를 발견했을까요. 단순히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이야말로 이미 존재하던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든 기술적 토대였습니다. K-pop의 세계적 확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콘텐츠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세계 곳곳에 발견시키고 확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항해술, 즉 플랫폼과 미디어 기술이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재미난 영상과 신나는 음악, 기막힌 춤을 언제든 발견하고 공유하며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적 조선술과 항해술,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도구의 발달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신라면처럼 언제나 강렬한 매운맛으로 존재해온 K-pop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SNS를 타고, 유튜브를 타면서 아시아 밖 사람들에게 조금씩, 그리고 시나브로 ‘발견’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흥미롭습니다.
K-혁신이 일군 도파민 신대륙, ‘세계의 한국화’는 진행 중🌏
필자는 이런 ‘발견’과 그걸 넘어선 ‘붐’의 한 축엔 ‘한국의 세계화’가 아닌 ‘세계의 한국화’란 흐름이 있다고 봅니다. 한때 한강의 기적 이면에 자리했던 ‘빨리빨리’ 문화는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게 만든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세기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IMF 구제금융 등을 겪으며 그런 시선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빨리빨리’가 언제부턴가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닮고 싶어 하는 한국의 미덕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특히 재미난 콘텐츠의 내용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편화된 데 이어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초고속 이동통신이 발달했고, 유튜브에서는 초고화질 영상이 기본값이 되어갔습니다.
이전의 세계였다면 오프라인에서 재미와 파티를 찾아다녔을 세계의 젊은이들마저 기꺼이 ‘스몸비(스마트폰 Smartphone + 좀비 Zombie의 합성어)’가 되고, ‘유튜브 너드’가 되고, 화면 속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제국’을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오랫동안 묵묵히 축조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한 경쟁과 오지선다, 입시지옥 속에서 작은 파티조차 일탈로 치부되던 시절, 적잖은 청소년에게 아이돌 문화는 일종의 ‘대리 분출구’였습니다. 직접 춤추고 노래하지 않아도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대리만족 콘텐츠로 진화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장르의 혼종과 고텐션(高-tension)의 ‘매운맛’이 차곡차곡 배양되고 있었습니다.
![① 2023년 8월 20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K-pop 콘서트에서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② 2023년 12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한국의 날 페스티벌에서 한복을 입은 현지 K-pop 팬들 ③ 2024년 10월 13일 에콰도르 과야킬의 전시된 K-pop 아이돌 상품들. [사진 출처: 셔터스탁]](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8/photo_03.png)
① 2023년 8월 20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K-pop 콘서트에서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② 2023년 12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한국의 날 페스티벌에서 한복을 입은 현지 K-pop 팬들
③ 2024년 10월 13일 에콰도르 과야킬의 전시된 K-pop 아이돌 상품들.
[사진 출처: 셔터스탁]
K-pop 제국에서 콘텐츠 러버들의 유토피아로🌏🎧
그래미와 빌보드에 균열을 일으킨 일련의 K-혁명은 세계 음악 시장을 주도해 온 미국의 지도마저 더 이상 물리적 지리만으로 그릴 수 없게 됐음을 보여줍니다. 초연결 시대 이전 미국의 이웃은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음악 시장에서도 지리적 인접성이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는 66일, 약 570만 초를 항해해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반면 2026년 콘텐츠 신대륙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6초 안팎. 무려 1,000만 배에 가까운 속도 차이입니다. 자동차와 광속 비행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 국경, 아니 화면을 맞댄 수많은 ‘인접국’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 바로 K-pop 제국입니다. 강력한 도파민을 충전해주는 콘텐츠, 팬들과 화면 너머에서 가족처럼 소통하는 친근한 아티스트들이 넘쳐나는 ‘콘텐츠 러버들의 유토피아’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사건이, 선언이, 이슈가 우리를 또 놀라게 할까요. 어쩌면 이 모든 게 더는 놀랄 일도 아니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 지도에서 ‘신대륙’을 아무도 지워낼 수 없듯, 이제 콘텐츠 세계 지도에서 ‘K-pop 신대륙’은 지워지지 않는 대륙적 존재감을 뽐낼 테니까요.
그럼 수많은 ‘메달’과 ‘승전보’가 들려오는 지금부터 우린 뭘 더 해야 할까요. 문화의 내적 체질이 튼튼한 국가, 스펙트럼이 광활한 나라를 지향하고 달려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국민 보편의 행복은 금메달의 수, 금탑산업훈장 같은 걸로만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20세기 소년소녀는 진작에 몸소 경험했잖아요.
이 멋진 신세계, 예쁜 신대륙, 동방의 화려한 K-pop의 나라에 금빛 아이돌뿐 아니라 다채로운 무지개색 청각 콘텐츠가 넘쳐나길, 그것들이 두루 생산되며 종사자와 소비자가 곳곳에서 행복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진정한 ‘덕후 천국’이 되길 희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