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생크림, 반짝이는 캐러멜, 한입 베어 물면 부서질 듯한 파이의 결. 영화 속 디저트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그리고 달콤한 소품쯤으로 흘려보내죠. 하지만 그 장면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면 어떨까요?

영화 속 디저트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붙잡고, 감정을 대신 전하며 때로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를 드러내죠. 달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결핍과 욕망, 그리움의 시간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기억을 소환하는 마법의 디저트, 마들렌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마들렌(Madeleine)은 특별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폴은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말을 잃은 채 두 이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폴의 하루는 마치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고 반복적인 리듬 위에 놓여 있는 듯 보이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수상한 이웃,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게 됩니다. 이름부터 어딘가 문학적인 이 여인은 집 안에 작은 정원을 가꾸고 허브를 키우며 직접 차를 만듭니다.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우연히 그녀의 집에 들어간 폴이 그녀가 건넨 차 한 잔과 마들렌을 맛본 순간, 그는 정신을 잃듯 과거의 기억 속으로 단숨에 끌려 들어갑니다. 폴의 눈앞에는 그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환상처럼 펼쳐지죠.

그날 이후 폴은 마담 프루스트의 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조금씩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합니다.

마들렌, 추억을 깨우는 ‘프루스트 현상’의 열쇠가 되다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프루스트 문학에서 유명한 ‘마들렌 효과’와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먹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예기치 않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묘사합니다. 이 장면은 이후 후각과 미각이 무의식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감정을 순간적으로 깨운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죠.

영화는 이 문학적 장면을 시각적으로 옮겨오며, 마들렌을 기억과 감정의 문턱을 여는 장치로 사용합니다. 이 디저트는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내면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을 깨우는 열쇠가 됩니다.

ⓒ 마담 프루스트 비밀의 정원 예고편

엘리제궁에서 남극까지, 그리움을 요리하는 마음

마들렌이 잊고 있던 기억을 깨웠다면,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속 생토노레(Saint-Honoré)는 오래 지켜온 기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남극기지의 주방에서 시작합니다. 눈보라가 치는 척박한 공간에서 주인공 오르탕스가 대원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을까?” 싶은 순간,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지내던 오르탕스는 어느 날 ‘대통령의 개인 셰프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고 엘리제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통령이 프랑스식 집밥을 원했기 때문이죠.

ⓒ 영화<엘리제궁의 요리사>

하지만 오래전부터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엘리제궁의 주방에서 그녀의 생활은 순탄치 않습니다.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했던 대통령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오르탕스를 향한 억측과 질투는 커지고 결국 그녀는 엘리제궁을 떠나 남극기지까지 오게 됩니다.

할머니의 추억과 엘리제궁 향수의 연결고리 ‘생토노레’

1년여간 남극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만찬을 준비한 오르탕스는 ‘생토노레’를 준비합니다. 그녀는 ‘이 디저트를 만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라며, 하나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기리는 뜻에서 준비했고, 또 하나는 2년간 일했던 곳의 거리 이름과 케이크 이름이 같아서라고 말하죠.

ⓒ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생토노레’ 장면

거리의 이름은 생토노레, 55번지는 엘리제궁을 뜻합니다. 이 순간 생토노레는 할머니의 디저트이자, 엘리제궁의 기억을 함께 담은 음식이 됩니다. 과거 권력의 식탁과 현재의 남극기지를 연결하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 디저트인 셈이죠.

남극 대원들은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를 나눠 먹고, 오르탕스의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가득합니다.

저도 생토노레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생토노레는 프랑스의 고전적인 디저트로 슈와 캐러멜, 시부스트 크림, 퍼프 페이스트리로 이뤄진 디저트죠. 폭신하고 슈 안에 부드럽게 꽉 찬 크림, 거기에 달콤한 캐러멜과 파사삭 소리를 내는 퍼프 페이스트리의 맛은 그야말로 잘 짜여진 합주처럼 느껴집니다. 오르탕스의 생토노레에는 시부스트 크림 대신 할머니의 크림(crème mémé)이 들어간다니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 생토노레

카놀리, 전통과 혁신, 향수와 새로움의 경계를 허물다

영화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공간의 기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영화 <마이 베이커리 인 뉴욕>에 등장하는 ‘카놀리’처럼 말이죠. 이 영화는 브루클린의 오래된 제과점 ‘이자벨 베이커리’의 주인이자 두 주인공의 이모인 이자벨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사촌 비비안과 클로이가 가게를 공동으로 상속받으면서 시작됩니다.

ⓒ 영화 <마이 베이커리 인 뉴욕>

공동상속인이 됐지만 두 사람의 운영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비비안은 이모의 레시피와 동네 단골들의 입맛을 지키며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반면, 인기 요리 프로그램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클로이는 새로운 메뉴와 감각을 더해 가게를 변화시키고자 하죠. 전통과 혁신, 향수와 새로움, 누가 더 옳다고 할 수 없는 이 대결은 영화의 큰 축을 이룹니다.

전 이 영화를 볼 때 ‘카놀리(Cannoli)’가 처음에 등장해서 무척 의외라고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카놀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이기 때문이죠. 제목처럼 배경이 뉴욕이라면 베이글 정도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알고 보니 이 설정은 마지막에 아주 중요한 단서이긴 했습니다. ‘카놀리’ 덕분에 가게가 위기에서 벗어나거든요.

ⓒ 카놀리

카놀리는 길고 둥근 셸 안에 달콤하게 만든 리코타 크림을 채워 만든 디저트입니다. 시칠리아에서 사랑받는 디저트인데, 영화 ‘대부’의 명대사로 “Leave the gun, Take a cannoli (총은 버리고 카놀리는 챙겨)”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디저트죠.

영화에서 이 디저트는 원산지의 정통성보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베이커리가 카놀리를 팔게 된 이유에 주목합니다. 카놀리는 이 베이커리가 단순한 개인의 가게가 아니라, 이민자의 기억과 동네의 역사, 여러 세대의 취향이 겹쳐 쌓인 공간임을 암시하는 ‘향수의 코드’로 등장합니다.

디저트, 기억을 굽고 시간을 담다

이처럼 영화 속 디저트는 배경 소품에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디저트는 개인의 내면 깊숙한 기억을 깨우고, 어떤 디저트는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온 태도를 드러내며, 또 어떤 디저트는 한 공간이 축적해온 시간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크린 속 케이크를 보며 단순히 달콤함만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기억과, 그 기억이 머물렀던 장소까지 함께 떠올리게 되죠. 어쩌면 디저트가 우리를 위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 달콤함은 잠시지만, 기억은 오래 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