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버블 티 열풍이 불더니 요즘은 흑당 버블 티가 대세입니다. 버블 티에다 흑설탕을 잔뜩 추가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인기일까요? 극강의 단 맛을 이유로 꼽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맛의 비밀은 흑당(黑糖)에 있겠는데요.
흑당은 사실 흑설탕과는 다릅니다. 원칙적으로 사탕수수즙을 정제해 결정화시킨 것이 흑설탕인 반면 사탕수수즙을 그대로 졸여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만든 게 흑당입니다. 그 때문에 흑설탕에 단맛만 있다면 흑당에는 사탕수수의 풍미가 살아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해 남국의 향기와 맛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음식의 역사를 조사하다 보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흑당 버블티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먼저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이 음료,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2010년을 전후로, 타이완에서 유행해 세계로 퍼진 흑당 버블 티
버블 티는 대략 1990년대 타이완에서 유행해 세계로 퍼졌고 흑당 버블 티는 2010년을 전후해 역시 타이완에서 생겨나 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원조가 따로 있습니다. 흑당 버블 티의 원조는 사실 ‘감자탕’입니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 어떻게 감자탕이 흑당 버블 티의 원조가 될 수 있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는 분들이 대부분이겠는데 옳은 말씀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뼈 해장국, 감자탕이 원조는 아닙니다. 사탕수수의 한자 표기인 감자(甘蔗)의 즙을 끓여 졸인 국물인 탕(湯) 이어서 감자탕입니다.
이쯤 되면 말장난으로 억지 관심 끌려 한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겠는데 애써 부정은 않겠지만 그런데도 말장난 같은 소리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흑당 진주 우유차’라는 현대 중국어 표현이 아닌 감자탕이라는 옛날 표현이 실제로 있을 만큼 흑당 버블 티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1,400년 전 흑당은 사탕수수에서 짜낸 즙을 햇빛으로 수분을 증발 시켜 만들었다
옛 문헌에서 흑당이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지』입니다. 소설 삼국지인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역사 책에 나오는 기록이니 3세기 무렵 실제 존재했던 식품입니다. 오나라 역사를 적은 「오서」에 교주(交州)에서 감자당(甘蔗餳)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감자당은 사탕수수 엿이니 요즘 말하는 흑당이고 이것을 끓여 마신 게 감자탕입니다.
교주는 지금의 중국 광동 광서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이역만리 남만 지역입니다. 이 무렵에 감자당, 즉 흑당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1,400년 전인 6세기 말 육조시대 기록에는 사탕수수즙을 햇빛으로 말렸다고 나옵니다.
정리하면 남국에서만 자라는 사탕수수에서 짜낸 즙을 햇빛으로 수분을 증발 시켜 엿 덩어리로 만든 것이 흑당인데 남방에서 공물로 바쳐야만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였으니 옛날 중국에서는 흑당을 구하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신당서』에는 당 태종이 647년 마게타(摩揭陀)국에 사람을 보내 흑당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마게타 국은 신라 스님 혜초가 다녀온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나라로 지금의 인도에 있었습니다.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나오는 ‘흑당’
흑당은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중원에 퍼졌고 사탕수수 재배법과 흑당 제조법이 일본과 타이완에도 전해졌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순조 무렵에 보이는데 한반도에서는 사탕수수 재배가 안 됐던 만큼 서양 수입품인 박래품(舶來品)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조선 선비가 맛보고는 점입가경의 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옛날 흑당은 엿이나 꿀보다 단 남방의 귀중품이었기에 약으로 많이 쓰였는지 주로 의학서에 기록이 보입니다. 1,500년 전인 6세기 남조 시대 의서인 『명의별록』에 사탕수수는 광동에서 나오는데 그 즙에서 얻은 사탕(沙糖)은 사람에게 아주 유익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무렵은 아직 설탕 정제기술이 나오기 전이니, 사탕은 사탕수수즙을 졸인 흑당이었을 것입니다.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간을 따뜻하게 하고 조혈작용을 돕는 등 건강에 이롭다고 나옵니다. 옛사람들 눈으로 보면 흑당이 워낙 귀했던 식품으로 어렵게 구해 필요할 때만 마셨으니 그 자체로 보약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흑당 버블 티, 알고 보면 유서 깊은 동양의 보약 같은 음료였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흑당의 건강한 단맛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만사 필요할 때 적당히 취하면 무엇이든지 보약이지만, 맛있고 좋다고 지나치면 과유불급, 모자람만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