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내게 신성한 아침 의식이다. 아침에 눈뜨기 어려울 때면 “커피를 만들자. 커피를 만들자.” 주문을 외워본다. 뜨겁고 향긋한 커피를 떠올리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귀찮더라도 매번 신선한 원두를 그라인더에 바로 갈아야만 한다. 미리 갈아둔 커피가루로는 아침의 에너지를 얻기가 어렵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위이잉, 원두 갈리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커피가루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으면 벌써 기분이 고조된다.
 
드립용 페이퍼에 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솔솔 붓는 과정은 그 자체로 황홀하다. 단숨에 물을 붓지 않도록 주의하며, 신중하게 물을 흘려내리노라면 애장 영화가 떠오른다.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커피 한 잔의 맛과 향기를 위해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매일 아침 똑같이 따라한다. 조용히 드립하는 과정은 일종의 ‘커피 명상’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데는 최고다.
 
<카모메 식당>은 대표적인 힐링 영화다. 내가 나를 소홀히 대한 것 같을 때면 언제나 커피 한잔에 시나몬롤 한 개를 곁들이고 이 영화를 플레이한다. 이야기는 담백하고 심플하다. 물론 그 속의 인생사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20년 동안 부모님 병간호를 해온 마사코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돌연 핀란드로 떠난다. 일본과 달리, 핀란드 사람들은 유유자적 사는 것처럼 보인다.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대회’, ‘부인 업고 달리기 대회’ 같은 걸 열심히 하는 핀란드인들의 인생이 마사코에겐 일종의 환타지였을 수 있겠다. 목표도 열정도 없이 살고 싶어서 이곳을 택한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또 다른 인물인 ‘사치에’.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카모메 식당’을 홀로 운영한다. 카모메 식당은 생뚱맞게도 일본 가정식 식당이다. 물론 손님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치에의 하루는 단정하게 빼곡하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열심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한 손님이 그녀에게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커피 원두 가루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코.피.루.왁” 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 그가 갓 내린 커피를 맛본 사치에는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가르침에 따라 ‘코피 루왁(Kopi Luwak, 말레이사향고양이가 먹어서 그 소화 기관을 통과한 커피 열매로 만드는 커피)’을 조용히 외치며 커피를 내린다.
 
이전과 같은 커피 원두, 이전과 같은 물, 이전과 같은 그라인더다. 그런데 왜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마법의 주문은 ‘마음’이었다. 마음을 담아 내리면, 단 한 사람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내리면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코피 루왁’을 외울 때의 마음이 커피향과 맛을 더한 것이다. 이 ‘코피 루왁’의 주문의 의미를 사치에는 금새 알아 차렸다. 카모메 식당은 일종의 ‘커피 영화’다. 커피에 대한 사랑이 장면마다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중요 장면마다 꼭 커피 한 잔씩. 커피가 얼마나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긴 찬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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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커피앳웍스’

 
카모메 식당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했으면 싶은 날이 있다. 누군가 나만을 위하여 정성껏 내려주는 최고의 커피 한 잔이면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 같아서다. 그렇게 특별한 위로가 필요한 날이면 커피앳웍스의 문을 연다. 사치에의 정성스러운 손길처럼, 최고의 바리스타가 원하는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 준다. 세계 유명 원두 산지에서 나는 것 중에서도 상위의 원두를 사용하니, 맛과 향이 남다르다. 커피앳웍스에서는 밸런스가 좋은 최상의 원두를 블렌딩한다. 에스프레소 디바(Diva)는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원두를 블렌딩한 것으로 과일 향과 기분 좋은 단맛, 가벼운 바디감이 압권이다. 블랙 앤 블루(Black & Blue) 에스프레소는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파푸아뉴기니 원두를 블렌딩한 것으로 캐러멜 같은 달콤한 향과 무거운 바디감이 특징이다. 두 종 모두 로스팅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맛과 향이 최고조로 끌어올려진다. 본래 그레이 컬러인 생두에 열을 가해 조직을 팽창시키면,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이 아주 깊어진다. 이러한 정성도 모두 ‘코피 루왁’ 주문의 일종일 거라고 생각하며 원두를 고른다.
 

깔끔한 맛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케맥스 추출법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

 
재미요소가 하나 더 있다. 맘에 드는 추출법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하는 편이다. 깔끔한 맛, 깊고 진한 맛, 부드러운 맛 등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내 취향을 살펴보자. 곡물 성분이 함유된 두툼한 필터를 사용해 잡맛을 걸러낸 케맥스(Chemex) 방식 커피는 정말 깔끔하다. 진한 것이 좋으면 프레스(Press) 추출법이다. 커피의 오일 성분이 사라지지 않아서 바디감이 묵직하다. 그런가 하면 핸드드립 커피는 더욱 섬세하다. 바리스타의 핸들링과 물줄기의 강약에 영향 받는 드립커피는 유독 마니아가 많다.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위치한 커피앳웍스 매장

 
출국 전, 내 별난 취미 중 하나는 공항에 있는 커피앳웍스에서 부드러운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 첫 모금을 마시기 전에는 언제나 ‘코피 루왁!’ 주문을 건다. 그리고는 하늘로 떠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핀란드에까지 가지 않아도 숨이 쉬어지는 느낌. 긴 숨을 내쉬고 다시 힘을 내본다.
 
 

글. 자유기고가 김은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