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허무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남의 편 같을 때. 정신없이 달리다가, 이 모든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 나는 겨우 걷고 있는데, 그조차 힘에 부친데, 친구들은 저 멀리 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랬던 일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받을 땐 영화를 보러가는 습관이 있다. 2시간 남짓, 현실 세계와 격리된 스토리 속에 잠겨 있다 나오면 내 감정에 대해 훨씬 객관적으로 보게 되곤 하니까.
 
시끄러운 총격과 액션이 가득한 영화를 고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담담한 영화를 찾는다. 온기와 달콤함이 밴 담담함이라면 나무랄 데 없다. 영화 <앙>은 실의에 빠진 나를 여러번 구조해 주었다. 보드랍고 달콤한 간식과 다정한 위로가 함께하는 티타임 같은 영화라면 올바른 비유일까.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납작하게 구운 밀가루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전통 단팥빵 ‘도라야끼’를 파는 작고 소박한 가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가게 주인 센타로에게 도쿠에라는 할머니가 찾아온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배우 키키 키린이 도쿠에 역으로 열연했다. ‘마음을 담아’ 만든다고 말하는 도쿠에의 맛있는 단팥 덕에 도라야끼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가게 주인 센타로의 표정도 밝아진다. 그런데 단골 소녀의 실수 탓에 도쿠에의 비밀이 밝혀지고 만다. 평생 말할 수 없는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온 도쿠에. 그러나 그녀는 운명에 저항하거나 거스르지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고 운명과 화해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 영화의 주제와 같다. 마음이 고단할 때 이 문장을 여러 번 되내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아름다운 대사 외에도, 시각적 요소가 영화를 근사하게 만든다. 벚꽃의 하늘거림, 따사로운 햇볕, 사그락거리는 바람 소리, 푸르른 초목 등이 영화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한다. 한 컷 한 컷이 엽서처럼 아름다워서,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래. 특별하지 않은 인생이어도 괜찮지. 세상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싶어진다.
 
 

단팥이 건네는 이야기

 
영화를 보고 나면 따뜻한 단팥으로 만든 무언가를 간절히 먹고 싶어진다. 배우 키키 키린의 인터뷰를 읽으면 간절함은 더 심해진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팥이 여행했던 과정을 보러 직접 다녀왔을 정도예요. 지금은 기계를 사용하는 농가가 많아서 직접 팥을 기르고 일일이 햇볕에 말리거나 하는 곳은 많이 없죠. 감독은 저에게 ‘다녀왔습니다’라며 주머니에서 팥알들을 꺼내 주곤 했어요. 제가 ‘팥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말이죠(웃음)”
 

  • 파리바게뜨 명품 도라야끼-1

  • 파리바게뜨 명품 도라야끼-2

풍부한 팥앙금에 통통한 밤 한 톨, 쫄깃쫄깃 찰떡, 상큼한 유자로 맛을 더한 파리바게뜨 ‘명품도라야끼’

 
손수 단팥을 끓이고 반죽을 할 수는 없지만, 도라야끼를 먹고 싶다면 파리바게트도 괜찮다. 유자, 떡, 밤 등을 넣어 개성 있는 도라야끼다. 내 취향은 전자레인지에 아주 살짝 돌려 차가운 우유와 먹는 식이다. 영화를 틀고, 보드랍고 따끈한 도라야끼를 한입 베어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쿠에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을 생각하면서, 빙긋 웃는다.
“즐거운 시간이었어. 맛있을 땐 웃어야지.”
 

글. 자유기고가 김은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