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호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탁월한 상상력과 뚜렷한 색깔을 보여줬던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신작 「호프」로 돌아왔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도맡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이라 불립니다. 이번 신작 「호프」뿐만 아니라, 데뷔작인 「추격자」(2008)부터 「황해」(2010), 「곡성」(2016)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쓰고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대표작 포스터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상상에서 시나리오로, 그리고 관객의 언어로
영화 제작은 간단하게 말하면 작가의 머릿속 상상을 화면으로 옮겨 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상상을 텍스트로 옮기는 각본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작가가 상상과 사건 전개를 아무리 배우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더라도 결국 텍스트로 옮기지 않으면 그저 바람 같이 흩어지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이후 각본은 그림으로 이뤄진 스토리보드(콘티)로 제작됩니다.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촬영, 조명, 음향, 세트 등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텍스트보다는 좀더 세밀한 설계도와 시각적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의 야외 로케이션에서 나홍진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이 연출을 논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7/photo03.png)
영화 「곡성」의 야외 로케이션에서 나홍진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이 연출을 논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결국 작가가 떠올린 상상의 씨앗은 뿌리를 내려 시나리오가 되고, 다시 그림과 영상으로 재탄생합니다. 스태프들은 텍스트의 행간을 메우며 화면을 채우고, 관객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자신의 언어로 소비·해석·평가합니다. 상상이 텍스트로, 텍스트가 영상으로, 다시 텍스트로 순환하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영화 야외 촬영 현장 속 스태프들의 대기 모습(왼쪽), 슬레이트를 들고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태프와 연기하는 배우 모습 (오른쪽).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7/photo04.png)
영화 「곡성」 야외 촬영 현장 속 스태프들의 대기 모습(왼쪽),
슬레이트를 들고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태프와 연기하는 배우 모습 (오른쪽).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10년의 기다림, 극과 극이 엇갈린 평가
모든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쓴 나홍진 감독이기에, 그가 만들어 낸 화면은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그려온 상상에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전작 「곡성」은 「황해」가 나온 뒤, 6년 만의 작품이었습니다. 「곡성」은 시나리오 집필에만 2년 8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집필 기간 중 결말을 쉽사리 내지 못해 엔딩 신을 쓰는데 7개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곡성」 이후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팬들의 기대감이 큰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개봉 후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DMZ)에 인접한 어촌마을에서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존재와의 대결을 그린 「호프」는 평단의 호평과 달리, 일반 관객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히 엇갈립니다. 특히 결말 부근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관객이 많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의 촬영 장면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7/photo05.png)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의 촬영 장면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어떤 상상을 했는지, 이를 어떻게 엮어 화면에 담았는지,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합니다. 전작 「곡성」을 흥미 있게 본 관객이라면 「호프」에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해석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프」는 전작과 달리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호프」는 시작하자마자 쉴 새 없이 카레이싱을 하듯 폭주하며 관객들의 혼을 빼놓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독이 폭주 기관차 사이사이에 속임수인 듯 아닌 듯 던져 놓은 ‘떡밥’을 알아차리기가 더욱 쉽지 않습니다. 대체로 ‘불호’ 입장의 관객들이 ‘서사가 엉성하다(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혹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군데군데 던져 놓은 복선과 은유가 떠올라 SNS에는 「호프」를 둘러싼 ‘나만의 해석’이 백가쟁명식으로 퍼레이드를 펼치며 호평 또한 줄을 잇고 있습니다. 달리 보면, 이 영화는 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존 헐리우드식 SF 영화의 뻔한 기승전결 문법을 깨뜨린 점에 열광합니다.

미끼를 던지는 감독, 퍼즐을 맞추는 관객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서 관객에게 ‘미끼’를 던졌습니다. 관객들은 감독이 상상했던 이야기와 그림을 따라가다가 미끼를 물었고, 미끼를 물 때마다 저마다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감독의 계산이었든 아니든,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져 감독의 의도 그 이상의 풍부한 텍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호프」도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영화 시작부터 범석(황정민 분)은 성기(조인성 분) 일행의 소총을 보며 “이거 ‘칼뱅’이잖아”라고 부릅니다. 왜 범석은 총의 이름인 ‘칼빈’ 또는 ‘카빈’이 아니라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가와 이름이 같은 ‘칼뱅’이라고 불렀을까요?
![영화 의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는 총격신 모습 [출처: 네이버 영화]](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7/photo08.png)
영화 「호프」의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는 총격신 모습 [출처: 네이버 영화]
관객들의 이러한 질문은 영화 상영 시간인 내내 이어집니다. 외계인은 왜 소만 죽이고, 말은 죽이지 않나요? 외계인은 동네를 다 부수는 난동을 피우면서도 왜 범석을 보며 슬픔에 가득 찬 눈빛을 보여줬죠? 외계인은 왜 고약한 비린내를 풍길까요? 성기는 왜 죽지 않죠? 사실 이 모두가 감독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영상과 이야기를 관객들이 소비하며 해석하고, 평가하며 제기된 질문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오로지 해답을 찾는 건 관객들의 몫입니다.
“전작과 완전히 다르다”는 나홍진 감독의 말, 정말일까?
나홍진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호프」가 “제 전작과 다른 고민을 하고 만든, 다른 영화라고 꼭 써주세요.”라며 전작과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곡성」과 「황해」, 「추격자」 모두가 「호프」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모두 감독이 동일하기 때문에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감독의 의도가 슬며시 들어 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낯선 시골 마을을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는 「곡성」의 외지인과 「호프」의 외계인은 무척 닮아 있습니다. 사냥꾼 일행이 숲속에 불시착한 비행체에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곡성」에서 종구(곽도원 분)가 산속 외딴곳 외지인의 집을 몰래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 범석이 소의 사체를 카메라로 촬영하던 행위는 「곡성」 결말부에서 일광(황정민 분)의 동일한 행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에서 배우들이 유리창 밖의 낯선 외지인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은 영화 의 내러티브와 닮아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https://www.smdnewsroom.co.kr/wp-content/uploads/2026/07/photo09.jpg)
영화「호프」에서 배우들이 유리창 밖의 낯선 외지인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은 영화 「곡성」의 내러티브와 닮아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심지어 비행체 아래서 잠시 목격되었던 귀여운 괴생명체(?)는 「곡성」에서 외지인 집에 묶여 있었던 검정색 사나운 개와 마주치는, 그 상황이 비슷해 보입니다. 성기가 눌러쓴 녹색 모자는 「황해」에서 구남(하정우 분)이가 눌러 쓴 녹색 모자와도 닮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끝없는 ‘뇌피셜’이 쏟아져 나올 수 있겠군요. 이쯤이면 ‘이전 작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감독의 말조차 의도된 계산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호프」를 3부작으로 구상했고, 이미 시나리오까지 완성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속편 제작은 관객들이 얼마나 「호프」를 사랑해주는지에 따라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호프」를 보며 떠올린 수많은 물음표가 속편까지 계산한 ‘의도’된 ‘복선’이었다면 정말 속편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독이 10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상상한 그림을 따라가며 남은 퍼즐을 완성할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영화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장 1절)”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마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믿는 것, 바로 상상입니다. 「호프」는 감독의 상상을 따라가는 156분간의 유쾌한 추격전이었습니다.
글. 상미당홀딩스 뉴미디어팀 이강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