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음식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훈훈해지면서 비싸지 않고 맛도 좋은데 평소 자주 먹어 식상하지 않은 그런 요리 어디 없을까요?

 

세상에 그런 음식이 어디 있나 희망 사항이 거창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있습니다.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고 익숙하지만 참신한 음식, 바로 치즈입니다. 달랑 치즈 하나로 입이 즐겁고 몸이 따뜻해지며 마음마저 포근해진다고 호들갑이라니 치즈 마니아조차 ‘그건 아닌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치즈가 만들어 내는 요리 궁합을 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치즈

우리에게도 익숙하며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퐁듀 요리

 

우리도 익숙한 스위스 요리, 퐁듀가 대표적입니다. 뜨겁게 녹인 치즈에 빵을 찍어 먹는 알프스 민속 음식으로 요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 덮인 알프스는 관광객에게는 낭만이지만 현지 목동에게는 시련입니다. 계곡 따라 부는 바람에 맞서 젖소를 지켜야 했습니다. 산골 마을에 남은 음식은 포도주와 치즈 그리고 딱딱한 빵 덩어리뿐이었습니다. 눈 쌓여 고립된 마을에서 포도주 끓여 치즈를 녹이고 여기에 굳은 빵 찍어 먹으며 겨울을 보냈습니다.

 

퐁듀 유래는 이것이 전부가 아닌데요. 1차 대전 후 전쟁을 피한 스위스에는 우유가 넘쳐났습니다. 남아도는 우유로 치즈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공급과잉이었습니다. 해서 낙농업자들이 도산을 막으려 유행시킨 요리가 퐁듀입니다. 퐁듀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스위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과 인생이 녹아있습니다.

 

우리한테는 단순히 맛있는 요리지만 스위스 사람한테는 위안의 음식(comfortable food)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퐁듀는 이왕이면 구멍 송송 뚫린 스위스 에멘탈 치즈로 만들어야 제맛입니다. 알프스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은은하면서 고소한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이 찍어 먹는 빵 조각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치즈

갓 요리해 뜨거운 감자나 마카로니에 어울리는 체다치즈

 

찬 바람 불 때 우리가 고구마에 곁들여 먹는 김치 한 조각에서 어머니 손맛과 향수를 느끼듯 치즈 하나로 맛과 멋 그리고 유럽 소울푸드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그뤼에르 치즈나 체다 치즈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뤼에르 치즈는 알프스에서 발달한 맛과 향이 강한 치즈로 유럽의 가을과 겨울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프랑스의 소울푸드인 양파 수프에 그뤼에르 치즈를 넣어 오븐에 구우면 양파의 단맛과 어우러져 단짠이 만드는 조화와 진한 치즈의 풍미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치즈

한식과도 환상적 조화를 이루는 모차렐라 치즈

 

갓 요리해 뜨거운 감자나 마카로니에는 체다 치즈가 어울립니다. 노란 빛깔에서 풍기는 강한 맛과 짙은 풍미 등 여러 배경이 있지만 진짜 큰 이유는 익숙함입니다. 체다 치즈는 12세기 영국 남서부 체다 마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 때 미국과 영국에서는 전시에 우유 절약을 위해 체다 치즈만 만들게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순수 치즈가 아니라 ‘체다’라는 이름의 합성 치즈입니다. 우리가 지금 먹는 대부분의 체다 슬라이스 치즈가 바로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치즈 중 왜 하필 체다였을까요? 보관도 편하지만 그만큼 널리 먹어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치즈와 와인은 원래 찰떡궁합이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인까지 더한다면 뱅쇼와 까망베르 치즈만큼 어울리는 조합도 드뭅니다. 뱅쇼는 와인에 시나몬과 과일을 넣어 끓인 음료로 요즘 우리나라 카페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잘 구운 까망베르 치즈와 크래커 혹은 바게트를 곁들이면 몸도 따뜻해지면서 낙엽 떨어지는 파리를 여행하는 것 같은 낭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파리바게뜨가 가을을 맞아 다양한 치즈를 활용한 제품들을 선보인 ‘2019 치즈 페어’ 소개 영상

 

치즈가 반드시 서양 요리와만 궁합이 맞는 것도 아닙니다. 닭갈비와 치즈, 치즈떡볶이, 치즈 김치볶음밥, 해물 치즈 등등 한식과도 환상적 조화를 이루는데 한식에는 역시 모차렐라 치즈가 제일입니다. 생치즈의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한식 양념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역사적 배경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리지널 모차렐라는 이탈리아 남부에 전해진 아시아 물소 젖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아시아 음식인 한식과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지만, 한우도 아니고 물소와 우리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식과 워낙 궁합이 잘 맞아 품어본 망상이었습니다.

 

세상에는 5,000가지가 넘는 치즈가 있다는데요. 그러고 보면 치즈와 음식, 게다가 계절까지 궁합을 잘 맞춘다면 진짜로 입은 즐겁고 몸은 따뜻하며 마음은 훈훈해지는 그런 요리를 맛볼 수도 있겠습니다.

 
 

윤덕노 작가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