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몇 해 전 호주 브리즈번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조금 쉬고 싶었던 시기였죠. 다행히 그곳에는 오래 알고 지낸 동생이 있었고, 전 그 집에 머물며 편안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동네 빵집에 들르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가끔은 동네 할머니와 수다를 떠는 느린 하루였죠.

그중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던 순간은 늘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설 때였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퍼져 나오는 따뜻한 공기와 갓 구운 빵 냄새가, 그곳이 낯선 도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었거든요. 게다가 전 크루아상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집은 크루아상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버터를 듬뿍 머금은 반죽이 오븐 안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매장 앞까지 은은하게 퍼져 나오던 그 향은 이상할 만큼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브리즈번의 풍경은 분명 낯선 것이었지만, 그 빵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어딘가 익숙한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푸근했던 추억 속으로 이끄는 구수한 ‘빵 내음’

돌이켜 보면, 그때 저를 편안하게 만든 것은 풍경이나 날씨가 아니라 그 공간에 퍼져 있던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는 다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달리, 냄새는 생각을 거치기 전에 곧장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라는 곳으로 닿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빵 냄새를 맡으면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좋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마 그 향이 단순한 음식의 냄새를 넘어서 우리 삶의 어느 시간과 장면을 함께 불러오기 때문일 거예요.

제게 떠오르는 빵 냄새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부엌과 뭔가를 분주히 만들던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동생들과 장난치면서 기다리던 시간이 담겨있습니다. 이제는 오래됐지만, 제가 어릴 때 엄마가 구워주시던 도넛과 빵 냄새에는 혼자가 아닌 순간과 공간의 기억이 함께 있습니다.

따뜻한 빵 냄새가 편안한 감정을 만드는 순간, 공간과 기억을 연결하는 베이커리 이야기

맛있는 기억과 따뜻한 감정을 품은 빵 굽는 공간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품는 장소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공간이 실제로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머물렀던 경험과 감정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빵집에서 느꼈던 편안함은 단순히 좋은 냄새 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가 불러낸 ‘집의 감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느낌은 어릴 적 엄마가 만든 빵을 기다리던 시간과도 닮아 있습니다.

물론 빵 냄새에는 과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빵이 구워질 때는 단백질과 당이 열을 만나며 발생하는 마이야르 반응과 당이 분해되며 발생하는 캐러멜화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이고 풍부한 향은 우리에게 ‘맛있다’라는 신호로 작용하죠. 여기에 익힌 음식이 안전하다는 인식, 그리고 포만감 식품에 대한 본능적 선호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빵 냄새를 더욱 편안하게 느낍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이 풀어질 수밖에요.

빵이 만드는 공간의 분위기는 단지 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빵은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음식입니다. 재료를 준비해서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고, 다시 오븐에 넣고 굽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빵집에는 자연스럽게 기다림의 시간이 흐릅니다.

제 기억 속의 빵집들은 모두 즐거운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릴 때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렸다가 함께 갔던 동네 빵집, 대학 시절 신촌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나 들르던 빵집, 그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에그 샐러드빵을 사러 종종 찾는 지금의 빵집까지, 그곳들은 단순히 빵을 사는 곳이라기보다, 하루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끼어있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마음을 배달하는 빵집이라는 공간의 특별함

빵집은 카페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역할이 참 다릅니다. 커피는 머무는 시간을 위한 것이라면, 빵은 그것을 어디론가 가져가기 위한 것이랄까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빵 하나 사 갈까?’라고 떠올리는 마음은 나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빵은 그 공간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봉투에 담겨 다른 장소로 옮겨지고, 식탁 위에 놓이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퇴근길에 빵을 들고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에는 그 빵이 놓일 자리와 누군가와 함께할 시간이 이미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집’이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집은 꼭 정해진 장소라기보다 우리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상태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그곳에서는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도 됩니다. 낯선 곳에서라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곳 역시 우리에게 작은 집이 되는 거죠.

전 가끔 브리즈번의 그 빵집을 떠올립니다.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아무 이유 없이 편안했던 순간을요. 그곳은 단순히 빵이 맛있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던 또 하나의 집이었는지도 모릅니다.